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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도 와인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산지로 총 재배면적 10만 5000ha이다. 연 평균 생산량은 6억 6천만병(80%는 레드와인)이며 1만2천 명 이상의 생산자, 8000개 이상의 샤토(Chateau)가 있다. 온난한 기후와 자갈과 토사가 섞여 배수가 잘되고 온기가 장시간 지속되는 토양, 강으로 흘러드는 충분한 수분, 해변에 둘러싸여 바람을 막아주는 소나무 등 최적의 자연환경이 형성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2세기경부터 와인이 제조되었고, 1152년 보르도 지역의 공작 딸 알리에노(Alienor)와 영국 황태자의 결혼을 계기로 보르도와인이 영국에 수출되어 체계적 생산과 항구발달이 이루어졌다. 17세기 네덜란드, 18세기 미국에 수출되면서 와인을 병으로 판매하고 세계 최대의 와인산지가 되었다. 19세기 중반, 오이듐(Oidium)균과 필록세라(Phylloxera)병이 유행하였으나, 해충에 강한 미국품종의 뿌리에 보르도 포도품종을 접목시키는 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 무렵 와인 품귀현상으로 밀조가 성행하고, 이는 AOC(원산지 통제명칭)의 탄생배경이 된다. 1956년 전체적인 냉해피해는 보르도 와인 현대화의 발판이 되어 양조기술 발달, 품질 향상의 계기가 되었다. 1999년에는 유네스코(UNESCO)가 생테밀리옹(Saint-Emilion) 마을을 포도재배에 관련한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곳의 최고급 와인은 갸론강(Garonne R.)과 도르도뉴강(Dordogne R.)이 합류,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론드강(Gironde R.) 지역에서 나온다. 유명 와인 산지로는 메도크(Medoc), 그라브(Graves), 생테밀리옹(Saint-Emilion), 포므롤(Pomerol), 소테른-바르삭(Sauternes-Barsac) 지방이다. 그 중 세계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은 메도크으로 바 메도크(Bas-Medoc)과 오 메도크(Haut-Medoc)으로 나뉘며, 오 메도크(Haut-Medoc)은 포이약(Pauillac), 생테스테프(Saint-Estephe), 생쥘리앵(Saint-Julien), 마고(Margaux), 리스트락(Listrac), 물리스(Moulis)등의 유명 산지들을 포함한다.

    1855년 메도크 지방의 레드 와인과 소테른 귀부 화이트 와인에 순위를 매기면서 시작된 서열화 작업은 오늘날 그랑 크뤼(Grand Crul)와인을 탄생시켰으며, 초기에 마고(Margaux), 라투르(Latour), 라피드 로췰드(Lafite Rothschild), 오 브리옹(Haut-Brion)의 4개 샤토가 1등급 그랑크뤼 레드와인(프리미에 그랑 크뤼, Premier Grand Crul)으로, 귀부 화이트 와인 디켐(d'Yquem)이 1등급 그랑크뤼 화이트 와인으로 꼽혔고 1973년 무통 로췰드(Mouton Rothschild)가 포함되었다.

    보르도 와인은 각 포도원마다 그 토양에 맞는 2~3종류의 포도를 재배하고 그 포도를 블렌딩하여 조화시키는 것이 특징으로 타닌이 풍부한 카베르네 소비뇽(Carbernet Sauvignon)과 순한 맛의 메를로(Merlot)가 주로 사용된다. 보조 품종으로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프티 베르도(Petit Verdot), 말벡(Malbec)이 있다. 화이트와인의 경우 세미용(Semillon), 소비뇽(Sauvignon)이 주품종이며, 뮈스카델(Muscadelle)이 보조품종으로 쓰인다.

    보르도 지방의 와인은 부르고뉴 와인에 비해 무겁고 남성적이며, 지역 특유의 병 모양이 있어 구별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1982, 1988, 1989, 1990, 1996,1998, 2000, 2005, 2006년도의 빈티지가 비교적 좋은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인이 사랑하고 투자한 보르도 와인

    아주 오래전부터 투자 대상 와인은 대부분이 프랑스 와인이었고, 지금도 그 상황은 마찬가지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프랑스 중에서도 보르도 와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투자 주체는 누구였을까. 어떤 사람들이 보르도 와인에 투자했을까. 이 물음을 모두 현재형으로 바꾸어도 답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이 추세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르도 와인이 블루칩이 된 이유는 탁월한 숙성력 때문이다. 일반 와인은 금방 숙성되기 때문에 투자에는 걸맞지 않다. 하지만 보르도 와인은 천천히 숙성한다. 익기 전에는 떫은맛이 강해서 값이 싼 편이지만, 익으면 맛이 훨씬 좋아지므로 값이 비싸진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와인 가격이 쌀 때 미리 사두었던 습관이 오늘날의 와인 투자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보르도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이 되었을까. 보르도 와인의 매력을 간파하여 세계적으로 알린 사람이 과연 프랑스인일까? 답은, 아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을 섞어 최고의 황금 비율을 찾는 보르도 와인 방정식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이들은 영국인들이었다. 한마디로 프랑스는 와인을 만들고, 영국은 와인을 평가하고 소비한다. 영국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보르도 와인을 사서 모았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와인이 생산되었지만, 영국인들은 유독 보르도를 사랑했다.

    보르도 와인은 검붉은 빛깔의 진하며 분명한 개성을 가진 와인이다. 이런 보르도 와인을 가리켜 여왕의 와인, 와인의 여왕이라고 표현한다. 강하고 진한 맛의 와인이 왜 여왕의 와인이 되었을까? 차라리 군왕의 와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중세로 가야 한다. 엘레아노르(Eleanor) 여왕이 바로 보르도 비밀의 열쇠다. 그녀를 기려 여왕의 와인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보르도의 여공작이자 프랑스와 영국의 왕비였던 엘레아노르

    12세기 서유럽의 무대에는 프랑스 왕국, 아키텐(Aquitaine) 공국, 잉글랜드 왕국이 등장한다. 중세는 무력이 센 인물이 호령하던 봉건주의 시대였다. 프랑스 왕국이 샤를마뉴 대제 이후 권력이 쇠퇴일로에 있었던 반면, 아키텐 공국은 부강했다. 지금의 보르도 일대와 주변의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던 아키텐 공국은 윌리엄 10세의 나라였다. 그는 공작의 신분이지만 국왕이 부럽지 않았다. 아키텐의 면적은 프랑스 왕국 땅의 세 배를 넘었다. 부유한 아버지 윌리엄 공작의 극진한 사랑으로 성장한 엘레아노르는 미모가 출중했으며, 가무를 즐길 줄 알았고 패션감각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팔방미인이었다.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에게 시집간 그녀는 결혼 초기부터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15세의 꽃다운 나이에 넘치는 끼를 소유한 엘레아노르는 따분한 생활과 사랑 없는 결혼에 곧 싫증이 났다. 그녀는 15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곧 재혼했다. 상대는 앙주 백작의 아들이며 노르망디 공작의 아들, 그리고 훗날 영국 왕실의 대를 잇게 되는 열한 살 연하의 헨리 2세였다.

    엘레아노르는 헨리 2세 덕분에 다시 한 번 왕비가 되었고, 프랑스 왕비에서 이번에는 영국 왕비로 등극했다. 이 결혼은 훗날 ‘백년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중세 최대의 결혼 스캔들이 되지만, 당시 영국인들은 프랑스에서 시집온 왕비를 환영했다. 먹을 것이 풍부한, 특히 포도주의 명산지로 소문난 아키텐 출신이 아니던가. 신부의 재산은 곧 결혼지참금이 되어 그 모두가 다 영국 왕실의 소유가 되는 당시의 관습이 독특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풍요로운 보르도 땅 전체가 하루아침에 영국의 재산이 되었다. 더구나 보르도 와인의 맛을 일찌감치 알아차린 영국인들은 왕비의 고향이 보르도인 걸 알고는 더욱 환호했다. 영국인들에게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온 것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지하수가 오염되어 있었기에 음료수 공급을 위해 보르도,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와인을 수입해서 사먹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보르도가 영국에 병합된 다음에는 모든 게 달라졌다. 보르도는 수자원이 풍부한 땅이다. 지롱드(Gironde) 강, 도르도뉴(Dordogne) 강, 가론(Garonne) 강, 이 세 강이 흘러가는 곳이다. 구불구불 흐르며 대서양까지 흐르는 지롱드 강을 타고 화물선이 운항한다. 보르도 항구에서 배를 띄우면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보다 뱃길이 짧아 운송비가 적게 드는 이점이 있어 수월하게 보르도 와인을 반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보르도 와인은 영국인들에게 영국 와인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운송 기간이 짧은 것은 운송비 절감뿐 아니라 와인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왕실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루어진 결혼으로 인해 보르도를 즐기는 장본인이 바뀐 이야기가 이렇게 역사 속에 숨어 있다.

    보르도 시내의 한복판. 아빠는 와인숍으로 엄마는 백화점으로, 아이들은 회전목마로

     

     

     

    보르도의 와인 생산지

     

    보르도

    보르도(Bordeaux) 지방은 기후와 토양이 포도재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항구까지 있어 와인을 판매하는데에도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르도 와인은 질과 양에서 프랑스 와인 생산지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 보르도 와인은 프랑스 AOC, 크뤼 부르주아(Crus Bourgeois), 크뤼 끌라세(Crus Classés)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앵글로색슨 족 계통의 국가들은 많은 양의 보르도 와인을 수입하고 있다.

    보르도에서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으로 보인다. 로마 시대의 시인 오조니우스(Ausonius)가 쓴 글에 의하면 보르도에 와인이 들어 온 것은 기원전 56년에 로마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이다. 보르도 와인이 프랑스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세부터였다. 중세에 보르도는 영국의 영토였다. 루이 7세의 왕비였던 알리에노르 다키텐(Aliénor d'Aquitaine)이 루이 7세와 이혼 후 영국 왕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이곳을 지참금으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이전에 영국에서는 주로 라 로셸(La Rochelle) 지방에서 와인을 수입했었다. 백년 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라 로셸 지방과 보드로 지방의 소전쟁으로 번지게 되었으며 영국은 보르도 사람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하여 1224년에 라 로셸 와인의 수입을 금지시켰었다.

    그러나 백년 전쟁 이후 보르도는 다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16-17세기에 들어서 네덜란드인들이 새로운 고객이 되고 이들이 보르도 와인을 북유럽에 수출하면서 새로운 상업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8세기에는 영국인들이 산업혁명으로 축적한 부를 가지고 보르도의 포도원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보르도는 영국인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보르도 와인 중 하나인 “끌라레(Claret)”를 수입하고 있다. 또한 18세기에 보르도 와인은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와 산토도밍고까지 수출되었다. 이러한 식민지 무역은 프랑스 혁명 때까지 보르도 와인 산업의 번영을 가져다 주었다. 19세기 말 필록세라(Phylloxera)의 발생으로 와인 산업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필록세라 문제는 미국 포도나무와의 접목으로 다시 회생할 수 있게 되었다. 1930년대에 보르도 와인 무역은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 보르도에는 57개의 AOC, 약 7,000개의 샤또(Château), 약 13,000개의 포도원들이 있다.

    <자연 환경과 포도 품종>
    보르도 지방은 프랑스의 남서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보르도 지방의 기후는 온화한 서안 해양성 기후이다. 이 지방은 기후는 대서양의 영향으로 일반적으로 겨울이 짧고 온화하며, 여름은 뜨겁고 습도가 높다. 따라서 일조 시간이 풍부하고 고온 건조한 기후 때문에 포도가 자라는데 적합하다.
    이 지방의 이름은 이 지방 내에 있는 보르도 시에서 가져왔다. 그러나 정작 보르도 시에는 포도밭이 없고, 보르도의 경계 지역부터 포도밭이 시작되고 있다. 보르도 시의 위도는 44.5도 정도이며, 고도는 60m이다. 7월의 평균 기온은 섭씨 20.3도이다. 연중 강수량은 850mm이며, 수확기인 9월의 강수량은 70mm이다.
    보르도 지역의 주요 포도 품종으로는 메를로(Merlot),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세미용(Semillon),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뮈스까델(Muscadelle) 등이 있다. 이중 뮈스까델은 주로 보르도와 도르도뉴(Dordogne) 지방에서 재배되는 품종이다.

    <샤또와 와인 등급>
    보르도 와인에는 샤또(Château)라는 용어가 많이 등장한다. 원래 샤또는 불어로 성곽이나 대저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와인과 관련해서는 특정한 포도원을 의미한다. 샤또는 일정 면적 이상의 포도밭이 있어야 하고, 와인을 제조하고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 보르도에는 약 7천여 개의 샤또가 있다.
    보르도의 AOC는 프랑스 전체 AOC의 1/4이나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AOC 와인은 보르도 지역 도처에서 생산된다. 보르도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품질은 와인 생산자의 재능과 포도의 품질에 의하여 많이 좌우되는 편이다. 이는 같은 보르도 와인이라도 질적인 면에서 하위품에서부터 최상품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보르도 와인들의 순위는 최상품 중에서도 최상품에 속한다. 몇몇 샤또들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것들이다.

    보르도 와인의 AOC

    -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세(Bourdeaux grands crus classés)

    이 등급 안에는 다시 5개의 등급이 있다. 상위부터 프리미에 그랑 크뤼(Premiers grands crus), 두지엠 그랑 크뤼(Duexièmes grands crus), 트로아지엠 그랑 크뤼(Troisièmes grands crus), 까트리엠 그랑 크뤼(Quatrièmes grands crus), 생끼엠 그랑 크뤼(Cinquièmes grands crus) 순이다. 이 중 프리미에 그랑 크뤼에 속한 샤또들로는 샤또 라피트-로칠드(Château Lafite-Rothschild), 샤또 라뚜(Château Latour), 샤또 마고(Château Margaux), 무똥 로칠드(Château Mouton-Rothschild), 샤또 오 브리옹(Château Haut Brion)이 있다.

    - 크뤼 부르주아(Cru Bourgeois)

    이 등급은 2003년 6월에 새로운 법에 의하여 생긴 등급이다. 토양과 와인 생산 기술, 품질 유지, 역사 등을 토대로 490개의 샤또를 지정했다. 여기에는 메독(Médoc) 지역의 247개 샤또가 속해있다. 여기에는 다시 3개의 등급이 있다. 상위부터 크뤼 부르주아 익셉셔넬(Cru Bourgeois exeptionnel: 9개 샤또), 크뤼 부르주아 수뻬리에(Cru Bourgeois Superieur: 7개 샤또), 크뤼 브루주아(Cru Bourgeois: 151개 샤또)가 있다.

    - 크뤼 아르띠잔(Cru artisans)

    이 등급은 2006년 1월에 새로운 법으로 생긴 등급이다. 이 등급은 메독 지방과 마고(Margaux), 생쥴리앙(Saint Julien), 생떼스떼프(Saint Estèphe) 지역에 있는 와이너리와 샤또들을 선별한 것이다. 이 등급은 크뤼 부르주아 아래 등급이다.

    - 그랑 크뤼 생떼밀리옹(Grands Crus Saint Emilion)

    생떼밀리옹 지역의 샤또들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여기에는 다시 3개의 등급이 있다. 상위부터 프리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A(Premiers grands crus classés A), 프리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 B(Premiers grands crus classés B), 그랑 크뤼 클라세(Grands crus classés)이다. 이 중 프리미에 그랑 크뤼 클라세에 속하는 샤또로는 샤또 오존(Château Ausone), 샤또 슈발 블랑(Château Cheval Blanc)이 있다.

    - 그랑 크뤼 그라브(Grands Crus Graves)

    그라브 지역에 있는 샤또들에 해당하는 등급이다.

     

     

    5대 샤또(Grand cru 1th)

     

    1.샤토 라피트 로칠드(Chateau Lafite Rothschild)와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보르도의 대표적인 마을을 꼽으라면 와인애호가들은 주저 없이 포이약(Pauillac)을 언급할 것이다. 이 지역 와인들은 무른 과일의 신선한 향과 오크, 드라이함, 은은한 시가 향, 살풋한 단맛 그리고 묵직함이 조화를 이룬다.

    포이약에는 보르도의 명성 높은 와인들이 대거 몰려 있는데, 1855년 등급분류에서 그랑크뤼 1등급으로 분류된 5대 샤토 중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투르가 이곳에 있다.

    라피트와 로칠드는 각각 마을의 북쪽 끝과 남쪽 끝에 위치해 있는데, 라피트는 생테스테프 마을과, 라투르는 생줄리앙 마을과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와인의 특징은 묘하게도 인접 지역과 정반대다. 라피트는 생줄리앙의 부드러움과 정교함을 가진 반면, 라투르는 생테스테프의 단호한 견고함을 지닌다(‘와인 아틀라스’, 2009)

    보르도 와인산지

     

    샤토 라피트는 루이 15세 당시 ‘와인 왕자’로 알려져 있던 리슐리외재상의 후원으로 ‘왕의 와인’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훗날 미국의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1780년대 후반에 샤토를 방문한 이후로 열렬한 팬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라피트는 원래 귀족 출신의 세귀르 가문의 소유였으며 당시 이 가문은 라피트 말고도 라투르, 무통, 칼롱-세귀르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이 가문의 라피트 소유는 종지부를 찍었고 이후 1868년에 로칠드 남작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샤토를 구입하였다.

    샤토 라피트의 와인은 향기가 강하고 세련됐으며 본질적인 우아함을 지닌다. 라피트의 포도밭에는 석회질에 자갈이 드문드문 섞여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 70%, 메를로 20%가 주로 재배된다.

    라피트 와인은 부드러운 골격과 최상급의 섬세함 그리고 우수한 균형미를 갖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좌), 샤토 라투르(우)

    라투르의 명칭은, 옛날 중세 성벽의 일부였던 탑(la tour)이 포도원의 한쪽 끝에 우뚝 서 있는 데서 유래한다. 18세기에 라피트와 칼롱-세귀르를 소유하고 있던 세귀르 후작이 이 포도원을 사들였으며, 이후로 그는 모두가 부러워했던 ‘와인의 왕’이란 별칭을 얻게 되었다.

    지금은 프랑스의 금융 재벌 프랑소와 피노가 라투르를 소유하고 있다. 지롱드강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자갈투성이의 라투르의 포도밭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이 자라고 있다.

    포이약은 메독 와인들 중에서 가장 강인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중에서도 라투르는 무겁기로 정평이 나있다.

    15-20년 정도 기다리면 라투르는 절정에 도달하며 강인함, 중후함, 웅장하며 기품 있는 풍미를 드러낸다. 라투르는 매해 탁월한 품질을 유지해 왔으며, 평범한 빈티지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설의 100대 와인’, 2008).

    2.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

    포므롤(Pomerol)은 보르도의 주요 와인 산지들 중에서 가장 작은 지역이다. 포므롤의 양조장들은 역사적으로 메독 지역 와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와인에는 등급이 없다(등급 분류체계를 만들 만큼 오래 판매활동을 이어오지 못했기 때문).

    그리고 샤토들은 소규모 가업 형태여서 주인이 바뀜에 따라 변화가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포므롤의 가장 인기 있는 와인들은 메독의 그랑 크뤼 1등급 와인들보다 더 비싼 값에 거래된다(‘와인 아틀라스’, 2009).

    무명이었던 포므롤 와인이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40~1950년대 유능한 와인상인 장 피에르 무엑스의 등장과 때를 같이 한다. 1964년 샤토 페트뤼스의 지분을 50% 매입한 무엑스는, 페트뤼스를 ‘가격에 구애 받지 않고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반드시 마셔봐야 하는’ 전설적인 와인으로 만들었다.

    그의 아들 크리스티앙 무엑스 역시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품질 개선에 매진해 왔으며, 포므롤의 이웃 지역인 프롱삭에서도 와인을 생산하고 있고 캘리포니아 나파 밸리의 일류 양조장인 도미너스(Dominus)도 매입했다.

    포므롤의 점토 섞인 자갈밭에는 대부분 메를로가 자라고 있는데 그 중에는 수령이 1백 년 넘는 나무도 있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 중 가장 비싼 샤또 페트뤼스는 과실 향, 벨벳 같은 부드러움, 풍만함이 더할 나위 없다.

    최상의 해에 생산된 와인은 감초와 잼 같은 매혹적인 향이 글라스에서 뿜어져 나오고, 그 뒤를 이어서 크림 같은 블랙라즈베리의 폭발적인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이보다 더 화려한 레드 와인은 상상하기 어렵다.

    페트뤼스를 비롯하여, 예전에는 소수의 와인애호가들에게만 은밀하게 알려져 있던 포므롤의 와인들이 지금은 컬트 와인과 같은 명성을 누리고 있다.
     
    3.샤토 마고(Chateau Margaux)

    메독(Medoc)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을 마고(Marguax)는 매우 세련되고 향기로우며 귀족적인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특히 그랑 크뤼 1등급인 샤토 마고는 이 지역의 테루아를 가장 잘 반영한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기록에 따르면 영국의 수상이었던 로버트 월폴 경은 3개월마다 약 100상자의 샤토 마고 와인을 구입하였으며, 당시 프랑스에 파견되었던 미국 대사 토머스 제퍼슨은 1784년 빈티지를 시음한 후 “보르도에 이보다 더 좋은 와인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공산당 선언’의 공동저자인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샤토 마고 1848년”이라고 답했다.

    한편 샤토 마고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이 와인이 얼마나 선망과 탐욕의 대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샤토 마고는 귀족 출신의 은행가 소유였다가 부르주아 자본가의 손에 넘어가면서 하마터면 공중 분해될 뻔한 위기를 겪는다.

    다행히 지네스테 가문에 인수된 이후 운영이 원활해졌으며, 1977년에 멘첼로풀로스 가문이 샤토를 인수한 이후에는 대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고 뛰어난 양조 컨설턴트 에밀 페노를 영입하는 등 포도밭 및 양조시설을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전설의 100대 와인’, 2008).

    마고의 토양은 푸석푸석하고 자갈이 많은 편이라, 포도나무들은 부족한 수분을 찾아 땅속 7미터까지 뿌리를 내린다. 그 결과 와인들은 상당히 나긋나긋하며, 좋은 해에는 향이 풍부하고 우아하며 정교하다.

    또한 ‘벨벳 장갑으로 감싼 강철 주먹’으로 묘사될 만큼 힘과 섬세함이 조화를 이룬다. 샤토 마고는 메독의 대표적인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인 파비용 블랑 뒤 샤토 마고도 생산한다.

    샤토 마고는 와인뿐만 아니라 건축물 또한 매우 탁월하다. 18세기에 샤토 마고를 사들였던 라 콜로닐라 후작은 엄청난 거부였으며, 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당시 명망 있는 건축가 루이 콩브에게 건물의 신축을 부탁하였다.
     
    4.샤토 디켐(Chateau d’Yquem)

    소테른(Sauternes)과 바르삭(Barsac)은 보르도에서 스위트 와인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며, 메독과 함께 1855 등급분류에 포함되었다. 단 하나의 소테른 와인만이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등급(프리미에 그랑 크뤼)으로 지정되었는데, 바로 샤토 디켐이다.

    디켐은 프랑스의 가장 고귀한 디저트 와인으로, 진한 꿀 향을 풍기며 아무리 마셔도 싫증나지 않는 기분 좋은 달콤함을 선사하는데, 이는 와인이 적당한 산도와 알코올을 함유하고 복합적인 풍미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테른과 바르삭은 주로 세미용과 약간의 소비뇽 블랑으로 와인을 만든다. 9월말 시롱강의 아침안개가 포도밭을 감싸면 포도는 보트리티스 시네레아(귀부균, Noble Rot)에 감염되는데, 한낮의 햇볕을 피해 포도알 속으로 침투한 이 곰팡이로 인해 포도알의 수분이 빠져나가 농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세미용은 껍질이 얇고 당분을 많이 함유해 곰팡이에 취약하다. 수확기에 일꾼들은 이 포도를 하나하나 손으로 골라내 품질이 완벽한 포도만 추려내는데 이 과정에서 수백만 송이의 포도가 탈락한다(결국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겨우 한 잔의 와인이 생산된다).

    디켐은 작황이 좋은 해에는 5천-6천 상자를 생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에 아예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디켐은 숙성 초기, 즉 5년쯤 지난 무렵부터 달콤한 살구 향이 폭발적이지만, 풍부한 나무 향과 꿀, 잘 익은 살구, 파인애플, 과일 잼이 뒤섞인 놀라운 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10년에서 20년, 심지어 50년을 기다려야 한다.

    디켐은 작황이 좋은 해에는 5천-6천 상자를 생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에 아예 와인을 만들지 않는다. <출처: 보르도와인협회(CI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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